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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당시일식 156-03-29-제13시일식 [설교] 무심한 구미용담 평지되기 애달하다(원고) -선도사 양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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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3.29-제13시일식 \r\n\r\n\r\n[설교] 무심한 구미용담 평지되기 애달하다. 양윤석\r\n\r\n\r\n오늘은 조금 봄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금년 봄은 참으로 어렵게 맞이하는 듯합니다. 달력상으로는 봄이지만 꽃샘바람은 봄을 느끼게 하지 못합니다. 꽃샘바람은 꽃이 피는 것을 시샘한다는 제법 시적인 표현이지만, 사실은 겨울 내내 그 위세를 떨쳤던 시베리아 고기압이 물러가지 않겠다고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길에서는 사계절의 옷을 모두 볼 수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이들은 봄옷으로 갈아입고,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늦은 분들은 아직도 두꺼운 겨울 점퍼에 목도리까지 하고 다닙니다. 그런가 하면 전철 안에서는 에어컨을 가동하더군요. 계절이 변화하는 시기에 일어나는 작은 현상입니다만, 우리는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이를 혼란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면서 불편을 참게 됩니다. \r\n\r\n\r\n우리 세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는 일종의 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늘도 어제처럼 살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해진 길을 숙명처럼 사는 것이 당장은 편안할지 모릅니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변화가 없이는 성장도 없습니다. 행복에 관한 수많은 말들을 간추려보면 그 뼈대가 되는 말은 자신의 변화입니다. 꽃샘바람이 싫다고 해서 봄을 맞이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r\n\r\n\r\n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기존적인 질서에 순응해 살던 사람들에게 변화는 두려움입니다. 신사님께서는 <개벽운수>에서 선천과 후천의 운이 서로 엇갈려 싸울 때는 천지도 편안치 못하고 사람도 따라서 편안치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갑오년 동학혁명 같은 것도 그 예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후천개벽의 운수를 타고 태어난 우리 천도교인들은 변화를 거부하면 안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자신만의 변화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변화시켜야할 천명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r\n\r\n\r\n다음 시일날은 천일기념일입니다. 156년 전 경신년 4월 5일의 일은 인류 문명사의 새로운 획을 긋는 개벽의 날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하신 <용담가>에는 그 개벽의 순간이 웅장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한울님께서는 “개벽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하셨으며, 대신사님께서는 “어화 세상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 줄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이렇게 새 세상으로의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r\n그러나 봄이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를 시새워하는 꽃샘바람이 불어야 하는 것처럼 선천의 한울님 관념이나 도덕적 관념 역시 그 마지막 발악을 할 것임을 또한 예언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설교 제목으로 삼은, “무심한 구미용담 평지되기 애달하다”는 탄식입니다. 대신사님께서는 사람들이 특히 위정자들이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또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도처에서 역설하시고 그 변하는 길을 밝혀주셨습니다. 대신사님께서는 당신께서 밝혀내신 무극대도가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핍박을 받을 것을, 그래서 목숨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무심한 구미용담 평지되기 애달하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시었다고 생각합니다. \r\n\r\n\r\n󰡔도원기서󰡕에는 ‘아아, 용담정이여, 과연 평지가 되었구나’ 하는 강수의 탄식이 나옵니다. 대신사님을 안장한 후의 제자들의 애끊는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구미용담을 평지로 만든 것은 당시의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적인 가치관입니다. 우리 사람들이란 모두 한울님을 모시고 있는 절대적으로 존엄한 존재라는 말씀은 당시의 기득권층에게 있어서는 아마도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을 유지시켜온 엄격한 계급적인 관념이 무너졌을 때에 오는 혼란을 당시의 식자들은 아마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지배자도 없고 피지배자도 없는 사회, 빼앗는 사람도 빼앗기는 사람도 없는 한울백성의 사회로의 개벽의 선언은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비수였을 것입니다. \r\n\r\n\r\n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에도 변화해야 살 수 있다는 생각과 변화에 대한 두려워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있습니다. 반드시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안정된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나 나이가 드신 분일수록 변화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래도 변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분들이라도 막상 그 변화가 나의 인생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변화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그 변화가 내 목숨, 내 재산과는 관련이 없기를 바라게 됩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가 어떤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데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서로 대립하게 되고, 역사발전의 시계를 뒤로 돌려놓게 합니다. \r\n\r\n\r\n우리 천도교는 이 땅에 변화를 주도했던 종단입니다. 비록 지난 광복 후의 70여 년 동안은 우리가 그 변화를 주도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구미용담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로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우리는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남들처럼 교당을 높이 짓고 으리으리한 건물에서 우리의 세를 과시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스승님들이 가르쳐주시고 이 세상에 퍼뜨린 무극대도가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개벽은 결코 끝난 아닙니다. 지금 사회가 156년전 경신년 때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을 우습게 알고 오로지 물질적인 이익만을 생각하는 세태는 새로운 빈곤층이라는 계급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위정자들의 부정부패와 파렴치한 행동은 국민들에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외세의 압력은 나라가 망하기 직전의 구한말의 정세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세상은 천도교인들의 분발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r\n\r\n\r\n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왜 우리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여기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각가지 처방을 내놓고 있습니다. 누구는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누구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누구는 교인수를 이야기하고 누구는 시운까지 들먹이기도 합니다. \r\n\r\n\r\n저는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천도교인들이 천도교인으로서의 확실한 사상을 갖추지 못하고 세상의 추세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임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리 스승님들의 말씀을 잣대로 하여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렇게 된 것에는 교인 각자의 탓도 있지만 교인들을 제대로 교화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의 잘못도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교회가 베풀어야 하는 교화는 의식의 통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교회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업에만 너무 매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각 교인들의 일체감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내적 충실이, 하나로 통일되어 밖으로 넘쳐 드러나야 하는데 우선 갈 길이 바쁜 탓인지 드러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습니다. 신사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물의 근원이 깊지 않으면 웅덩이를 가득 채워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현실에서 다시 음미해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r\n\r\n\r\n그러나 교회가 교인들의 교화에 힘을 쓸 여유가 없다고 이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스스로라도 공부해야 합니다. 지난 번 우리 서울교구 목요청수 모임에서 있었던 일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요즈음은 신사법설 <성경신>편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 원로께서 말씀하시기를 거기에 나오는 “믿을 信 한 자는 비록 부모형제라고 변통하기 어려운 일이라”를 말씀하시는데, 거기서 그 ‘변통’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고민하다가 사전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믿을 信 자는 부모형제 사이에서도 꿔줄 수도 없고 받을 수도 없다는 뜻임을 알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변통이 무슨 뜻인지 아무도 알으켜 주지 않는 우리 교회이지만 이렇게 혼자서 공부하시는 분이 계시다니 정말로 우리 교회의 앞길은 밝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이 밀려왔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부터라도 경전 말씀을 공부해야 개벽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게 되고, 따라서 이제는 구미용담이 평지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는 우리 신념을 다질 수 있을 것입니다. (21.6장)\r\n\r\n------------------------------------------------------------------------------------------------\r\n[공지사항]\r\n\r\n◎중앙총부, 포덕156년 천일기념식\r\n*오는 4월 5일(일) 오전 11시 중앙대교당에서 포덕156년 천일기념식을 봉행합니다. 교인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r\n◎중앙총부, 포덕156년 천일기념 경축음악제\r\n*일시 및 장소 : 포덕156년 4월 4일(토) 3시 ~ 5시30분, 중앙대교당 \r\n◎중앙총부, 제75주기 춘암상사 환원일\r\n*4월 3일(금)은 제75주기 춘암상사 환원일입니다. 각 도가에서는 오후 9시 환원기도식을 봉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r\n◎여성회본부, 특별수련 안내 \r\n*일시 및 장소 : 3월 29일(일) ~ 4월 4일(토), 각 도가에서\r\n*기도식 : 새벽기도식, 9시 기도식(주문 100독) \r\n◎서울교구, 한울밥상 개시\r\n*금일부터 교구식당(한울밥상)이 운영되오니 이용 부탁드립니다.\r\n◎서울교구, 목요청수회 안내\r\n*일 시 : 4월 2일 오후 7시 교구성화실\r\n*수련과 토론, 해월신사법설「독공」숙독 바랍니다.\r\n◎서울교구, 학생회시일 안내\r\n*지도교사 : 이미애(논술학원장), 한정희(중등교사),\r\n김선배(과학영재원 교수) \r\n*교인자녀들의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학생회실).\r\n\r\n\r\n[감사합니다]\r\n[후원회비](원) 정윤택 100,000 한영부 100,000 박정균 50,000 정성택 30,000 김학규 20,000 한신자 10,000 \r\n[특성금](원) 조선희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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