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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의 교리는 3단계의 발전과정을 겪었다. 교조인 최제우 단계에서는 '시천주'(侍天主) 사상, 2대 교주인 최시형 단계에서는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 그리고 3대 교주인 손병희에 의해 개창된 천도교 단계에서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변화되었다. 물론 이 3단계의 교리발전 과정이 전적으로 단절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동학의 대교주 손병희가 동학을 천도교로 재편하면서 내세운 사상으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뜻으로 동학 창시자 최제우의 하느님을 내 마음에 모신다는 시천주 사상을 재해석한 것이다. 2대 교주인 최시형에 이르러서는 사람을 하늘같이 섬기라는 사인여천 사상으로 변화되었다. 시천주 사상에서 인내천 사상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초월적 존재인 하늘이 점차 인간과 하늘이 완전히 동일시되는 것을 보여준다. 천도교의 교리가 이돈화는 인내천 사상은 신이 변화·발전할 수 있다는 역동적인 신개념과 인간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을 강조한다고 보았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과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 사상을 계승하여 인내천으로 종지(宗旨)를 삼았다.최제우시대에는 신앙대상으로서의 하느님은 초월적·인격적 성격이 강한 '천주'로서 인간이 숭배대상으로 모셔야 하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시형시대에는 이러한 하느님 개념이 '양천주'(養天主)나 '사인여천' 사상에서 잘 나타나듯이 상당히 내재적이고 비인격적인 성격으로 전환했다. 즉 하느님은 인간의 마음 속에 내재하여 있으므로 인간이 잘 길러야 하는 존재로서 나타나거나 '천주'에서 '주'자(字)가 빠지게 되었다.
1905년 손병희가 창시했으며 동학을 모태로 하고 있다. 최제우의 시천주 사상과 최시형의 사인여천 사상을 계승하여, 손병희는 인내천 사상을 전개했다. 제1세 교주인 최제우를 대신사, 제2세 교주인 최시형을 신사, 제3세 교주인 손병희를 성사라고 각각 부른다.천도교가 등장할 때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개화파와 김연국 등을 중심으로 한 국내파 사이에 갈등이 있었고, 손병희 측이 일진회 사건을 계기로 김연국 일파를 출교 처분함으로써 결국 동학은 천도교와 시천교로 분립되었다. 이후 천도교는 합동과 재분열의 과정을 겪다가 1940년 최종적으로…
목차개요특징교리의례역사일제 강점기신구파 갈등과 신파의 친일 행적해방과 군사정권 시기현재북한에서의 천도교신자인 유명인기타개요 1905년 동학의 3대 교주인 의암 손병희가 동학을 개칭해 성립시킨 종교. 따라서 발원지는 경주, 교조는 최제우가 된다. 1908년엔 춘암 박인호가 4대 교주에 취임했다. 천도교에서는 포교를 포덕, 집회를 여는 장소를 '교당(敎堂)', 천도교의 최고 책임자를 교령[2], 중요 종교건물을 '수도원'이라고 통칭한다. 또한 천도교 신자들끼리는 서로를 동덕이라 부른다고. 동덕여자중학교, 동덕여자고등학교, 동덕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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