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놔두었다가는 나라가 망하게 된 것을 직감한 동학 지도자들이 광제창생과 보국안민의 깃발을 준비하던 1892년, 신생 천주교회는 궁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조선 최초의 성당을 짓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일 서학의 후손들은...
"각도동학유생(各道東學儒生) 의송단자(議訟單子)"라는 제목의 소원문에서 '동학이 유불선(儒佛仙)을 통합한 도로 이단이 아니며, 서양 오랑캐의 침입과 일본의 경제적 침투 속에서 광제창생과 보국안민을 염원하는 도학'임을...
의송단자의 핵심 내용은 첫째, 교조 신원을 통한 동학의 공인, 둘째,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을 통한 국정의 쇄신, 셋째, 일본 상인들의 경제적 이득 독점과 서양 열강의 이권 침탈을 막아달라는 외세의 배격, 반외세를 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마침 곽원이 광제(匡濟)의 재질이 있다하여 천거하였다. 곽원은 중주인으로 본시 충량(忠諒)을 품은... 이에 해내에는 기근이 심하고 민생이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중원에는 주인이 없으니 창생은 절망에 빠졌나이다....
1894년 광제창생·보국안민의 기치를 내걸고 신 사회건설을 주장하며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일약 호서지방 중심의 북접(北接)의 통령(統領)에 임명돼 남접의 전봉준(全琫準)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의 기수로서 활약한다....
1894년 전라도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과 탄압에 항거하여 전봉준이 동학혁명을 일으켰고 이때 내건 기치가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제창생(廣濟蒼生)이었다. 이들은 깃발에 이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속히 나오라고 "時乎時乎...
1894년 광제창생(廣濟蒼生), 보국안민(保國安民)의 기치를 내걸고 신 사회건설을 주장하며 동학혁명운동이 일어나자 호서지방을 중심으로 한 북접의 통령에 임명되어 남접의 전봉준과 함께 동학혁명운동을 이끈다. 북접군은...
보국안민(輔國安民), 제폭구민(除暴救民), 축멸왜이(逐滅倭夷), 광제창생(廣濟蒼生)의 동학정신을 내세운 전봉준(1855~1895)의 혁명은 왕조를 뒤집어엎는 역성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썩은 사초의 손톱 밑으로 깊숙이...
보국안민, 광제창생, 제폭구민, 척양척왜를 위해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 망사지] 주문을 외우며 죽창과 농기구를 무기로 정부군과 청·일군들에게 백성의 뜻을 이루고자 저항과 투쟁정신을 일본인 학자는 무기가 열세인줄...
현관 한쪽 벽면에는 학생들에게 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진천 출신 이상설 선생을 비롯해 김구, 신채호 등 독립운동가를 전시하고, 또 다른 벽면에는 김중권의 판화작품 '산훈'이 걸려있다. 통일선도학교로서 통일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