授受明實錄(수수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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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모시고네트워크 작성일 17-07-05 23:49 조회 884 댓글 0본문
1. 天化生萬物 意屬形體 任意用之者也 人而生子生女 愛而養之 及其終時意予子孫 傳家萬年矣
한울은 만물을 화생하고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요, 사람은 아들· 딸을 낳아서 사랑하여 기르다가 나중에는 뜻을 자손에게 주고 집을 기리 전하느니라.
2. 夫聖賢 統率天性 敬而誠之 及其至也 傳授後學 人人成道不忘守心故 不死不滅德與上天也夫
무릇 성현은 천성을 거느리어 공경하고 정성하다가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후학에게 전해주어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며, 마음 지키는 것을 잊지 않으므로 죽지도 멸하 지도 아니하여 덕이 상천에 닿는 것인저.
3. 天以意屬形體 任意用之明兮 侍字豈無信兮 豈無敬兮
한울이 뜻을 형체에 부쳐서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 명백함이여, 모실 시 자에 어찌 믿음이 없으며 공경이 없겠는가.
4. 故 生靈之前敬以致誠者 與人罷惑於物各有侍天主之根本 能得天地無窮變化之的實 速達萬事知 奉天合德之實常者也 根本的實依壁可乎 向我可乎
그러므로 생령의 앞에 공경히 정성드리는 사람은 사람으로 더불어 만물이 각각 시천 주의 근본이 있음을 파혹하고, 능히 천지 무궁변화의 적실한 것을 얻어서, 빠르게 만 사지에 달하여 한울님을 받들고 한울님의 덕에 합하는 실상이라. 근본적실은 벽에 의 하여 위를 설하는 것이 옳겠는가, 나를 향하여 위를 설하는 것이 옳겠는가.
5. 人之生子意予傳家 目前之 然 死後奉祀未惑之餘誠 然傳來風俗死後奉祀倍加生尊何者
사람이 자식을 낳아 뜻을 주고 집을 전하는 것은 눈 앞에 황연한 것이요, 죽은 뒤에 제사를 받드는 것은 미혹의 나머지 정성이라. 그러나 전해오는 풍속이 죽은 뒤에 제 사지내는 것을 살아 있을 때보다 갑절이나 존경함을 더하니, 어찌된 것인가.
6. 生子傳家在於目前 如是沒覺反是取末 又況死後推心在於渺然 何敢分釋 論其實常 生子傳家死後推心 使汝推心乎 與壁推心乎
자식을 낳고 집을 전하는 것은 눈 앞에 있는 것이나, 이와같이 몰각한 사람이 도리 어 이에 끝을 취하며, 또 하물며 죽은 뒤에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묘연한 것이라, 어찌 감히 그 실상을 분석하겠는고. 그 실상을 논하건대 자식을 낳고 집을 전하는 것 은 죽은 뒤에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너로 하여금 마음으로 생각케 하는 것이냐, 벽으로 더불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냐.
7. 夫聖賢之德 化被草木無不干涉 德如蒼天 賴及萬方也故 千秋萬代奉如皇天 與人授心 人人成道 授與受者明若觀火 聖訓聖德 念念不忘則 聖心神明我心燭矣 論其授受依壁授乎 依人授乎 與人授受 然無疑 以此觀之向我設位 豈不可乎
무릇 성현의 덕은 화하는 것이 초목에까지 미쳐서 간섭치 않음이 없고, 덕은 창천과 같아서 만방이 다같이 힘을 입느니라. 그러므로 천추만대에 한울같이 받들며 사람에 게 마음을 주고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니, 주고 받는 것이 불본듯이 밝은 것이니라. 성인의 가르침과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성인의 마음과 신의 밝음이 내 마음 을 비치나니, 그 주고 받는 것을 말할 적에 벽에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에게 의 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과 더불어 주고 받는 것이 황연히 의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보면 향아설위가 어찌 옳지 않겠는가.
8. 論其念字 人之相思 思則置矣 不思則無矣也 以此推之 天德師恩 思則存矣 忘則亡矣 天德師恩 念念不忘 至化至氣至於至聖矣
생각 념 자로 말하면 사람이 서로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이로써 추구하면 한울님의 덕과 스승님의 은혜도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잊으면 없는 것이니, 천덕사은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면 지기와 지 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이니라.
9. 聖訓曰 「人是天人也 道是大先生主 無極大道也」者 何者人是天人也者 天以化生萬物意屬形體 任意用之者也 道是大先生主無極大道也云者 以侍定知三字 以明天地無窮之根本 布于天下 人人合德成道 永世不忘者也 以此論之 其分釋難矣 以愚昧之心量之則初學入德 以侍天主三字合德 更受先生布德 以萬事知三字 大道見性若何若何
성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바로 한울사람이요, 도는 바로 대선생님의 무극대도 라」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바로 한울사람」이란 것은 한울이 만물을 화생함에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한다는것이요, 「도는 바로 대선생님의 무극대도라」한 것은 시·정·지 세 글자로써 천지무궁의 근본을 밝히어 덕을 천하에 펴고, 사람마다 덕에 합하고 도를 이루어 한평생 잊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 이로써 말하면 그 분석이 어려우니 어리석은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처음 배워 덕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시천주 석자로써 덕에 합하고, 다시 선생의 포덕을 받아 만사지 석자로써 대도견성하는 것이 어떠하고 어떠하리오.
10. 畵工欲圖 萬思量度 投筆成圖 量心照形者 比如依壁設位者也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려 할 적에 만번 생각하고 헤아려서 붓을 들어 그림 을 그리나니, 마음을 헤아려서 형상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비유하면 벽을 의지하고 위를 설하는 것과 같으니라.
11. 爲人成道者 每念聖訓 體用德行 傳心受心 豈有間矣哉 間或齊心默然正坐 敬念授受之際則 以神明聖道 然降身 至化至氣無時不明 無時不敎也 合用明知自量也夫
사람이 도를 이루려고 하면 언제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체와 용으로 덕을 행하며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받으면 어찌 사이가 있으리오. 간혹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바로 앉아 주고 받는 때를 공경히 생각하면, 신명성도로써 황연히 몸에 내리 어 지기와 지극히 화하여 때로 밝지 아니함이 없고 때로 가르치지 아니함이 없으니, 합하여 쓰고 발게 앎을 스스로 헤아릴진저.
한울은 만물을 화생하고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요, 사람은 아들· 딸을 낳아서 사랑하여 기르다가 나중에는 뜻을 자손에게 주고 집을 기리 전하느니라.
2. 夫聖賢 統率天性 敬而誠之 及其至也 傳授後學 人人成道不忘守心故 不死不滅德與上天也夫
무릇 성현은 천성을 거느리어 공경하고 정성하다가 그 지극함에 미쳐서는 후학에게 전해주어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며, 마음 지키는 것을 잊지 않으므로 죽지도 멸하 지도 아니하여 덕이 상천에 닿는 것인저.
3. 天以意屬形體 任意用之明兮 侍字豈無信兮 豈無敬兮
한울이 뜻을 형체에 부쳐서 임의로 활용하는 것이 명백함이여, 모실 시 자에 어찌 믿음이 없으며 공경이 없겠는가.
4. 故 生靈之前敬以致誠者 與人罷惑於物各有侍天主之根本 能得天地無窮變化之的實 速達萬事知 奉天合德之實常者也 根本的實依壁可乎 向我可乎
그러므로 생령의 앞에 공경히 정성드리는 사람은 사람으로 더불어 만물이 각각 시천 주의 근본이 있음을 파혹하고, 능히 천지 무궁변화의 적실한 것을 얻어서, 빠르게 만 사지에 달하여 한울님을 받들고 한울님의 덕에 합하는 실상이라. 근본적실은 벽에 의 하여 위를 설하는 것이 옳겠는가, 나를 향하여 위를 설하는 것이 옳겠는가.
5. 人之生子意予傳家 目前之 然 死後奉祀未惑之餘誠 然傳來風俗死後奉祀倍加生尊何者
사람이 자식을 낳아 뜻을 주고 집을 전하는 것은 눈 앞에 황연한 것이요, 죽은 뒤에 제사를 받드는 것은 미혹의 나머지 정성이라. 그러나 전해오는 풍속이 죽은 뒤에 제 사지내는 것을 살아 있을 때보다 갑절이나 존경함을 더하니, 어찌된 것인가.
6. 生子傳家在於目前 如是沒覺反是取末 又況死後推心在於渺然 何敢分釋 論其實常 生子傳家死後推心 使汝推心乎 與壁推心乎
자식을 낳고 집을 전하는 것은 눈 앞에 있는 것이나, 이와같이 몰각한 사람이 도리 어 이에 끝을 취하며, 또 하물며 죽은 뒤에 마음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묘연한 것이라, 어찌 감히 그 실상을 분석하겠는고. 그 실상을 논하건대 자식을 낳고 집을 전하는 것 은 죽은 뒤에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니, 너로 하여금 마음으로 생각케 하는 것이냐, 벽으로 더불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냐.
7. 夫聖賢之德 化被草木無不干涉 德如蒼天 賴及萬方也故 千秋萬代奉如皇天 與人授心 人人成道 授與受者明若觀火 聖訓聖德 念念不忘則 聖心神明我心燭矣 論其授受依壁授乎 依人授乎 與人授受 然無疑 以此觀之向我設位 豈不可乎
무릇 성현의 덕은 화하는 것이 초목에까지 미쳐서 간섭치 않음이 없고, 덕은 창천과 같아서 만방이 다같이 힘을 입느니라. 그러므로 천추만대에 한울같이 받들며 사람에 게 마음을 주고 사람마다 도를 이루게 하니, 주고 받는 것이 불본듯이 밝은 것이니라. 성인의 가르침과 덕을 늘 생각하여 잊지 않으면, 성인의 마음과 신의 밝음이 내 마음 을 비치나니, 그 주고 받는 것을 말할 적에 벽에 의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에게 의 지하여 주는 것인가. 사람과 더불어 주고 받는 것이 황연히 의심이 없느니라. 이로써 보면 향아설위가 어찌 옳지 않겠는가.
8. 論其念字 人之相思 思則置矣 不思則無矣也 以此推之 天德師恩 思則存矣 忘則亡矣 天德師恩 念念不忘 至化至氣至於至聖矣
생각 념 자로 말하면 사람이 서로 생각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생각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 이로써 추구하면 한울님의 덕과 스승님의 은혜도 생각하면 있는 것이요, 잊으면 없는 것이니, 천덕사은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아니하면 지기와 지 극히 화하여 지극한 성인에 이르는 것이니라.
9. 聖訓曰 「人是天人也 道是大先生主 無極大道也」者 何者人是天人也者 天以化生萬物意屬形體 任意用之者也 道是大先生主無極大道也云者 以侍定知三字 以明天地無窮之根本 布于天下 人人合德成道 永世不忘者也 以此論之 其分釋難矣 以愚昧之心量之則初學入德 以侍天主三字合德 更受先生布德 以萬事知三字 大道見性若何若何
성훈에 말씀하시기를 「사람은 바로 한울사람이요, 도는 바로 대선생님의 무극대도 라」한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바로 한울사람」이란 것은 한울이 만물을 화생함에 뜻을 형체에 부쳐 임의로 활용한다는것이요, 「도는 바로 대선생님의 무극대도라」한 것은 시·정·지 세 글자로써 천지무궁의 근본을 밝히어 덕을 천하에 펴고, 사람마다 덕에 합하고 도를 이루어 한평생 잊지 않게 한다는 것이니, 이로써 말하면 그 분석이 어려우니 어리석은 마음으로 헤아려 보면, 처음 배워 덕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시천주 석자로써 덕에 합하고, 다시 선생의 포덕을 받아 만사지 석자로써 대도견성하는 것이 어떠하고 어떠하리오.
10. 畵工欲圖 萬思量度 投筆成圖 量心照形者 比如依壁設位者也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려 할 적에 만번 생각하고 헤아려서 붓을 들어 그림 을 그리나니, 마음을 헤아려서 형상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비유하면 벽을 의지하고 위를 설하는 것과 같으니라.
11. 爲人成道者 每念聖訓 體用德行 傳心受心 豈有間矣哉 間或齊心默然正坐 敬念授受之際則 以神明聖道 然降身 至化至氣無時不明 無時不敎也 合用明知自量也夫
사람이 도를 이루려고 하면 언제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생각하여 체와 용으로 덕을 행하며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받으면 어찌 사이가 있으리오. 간혹 마음을 가다듬고 조용히 바로 앉아 주고 받는 때를 공경히 생각하면, 신명성도로써 황연히 몸에 내리 어 지기와 지극히 화하여 때로 밝지 아니함이 없고 때로 가르치지 아니함이 없으니, 합하여 쓰고 발게 앎을 스스로 헤아릴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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